나라밖여행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황금지붕 야경과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수다방 방장 2018. 7. 22. 22:02
728x90
반응형

 

 

 

 

알프스로 둘러싸인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황금지붕과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인스브루크로 향하는 길이 좀 늦어졌습니다. 2월 초라 해가 짧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구불구불한 알프스의 아름다운 산들을 넘어오다 보니 벌써 이렇게 어둠이 내려앉고 있네요.  

 

 

 

 

베네치아에서 인스브루크로 넘어오는 알프스의 산길은 겨울이라도 초록을 유지하고 있는 들판과 눈 덮인 알프스가 어우러져 정말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경이롭게 바라보다 인스브루크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둘씩 나타나는 마을들의 저녁 풍경은 평화로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고서야 도착한 인스브루크의 황금지붕.

인스브루크 구시가지에 있는 후기 고딕 양식의 이 건물은 페르디난드 4세가 1420년 티롤 주 영주 궁궐로 지은 후, 1497년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지시로 발코니가 만들어졌고 발코니를 덮는 지붕으로 2,738개의 도금된 동판으로 덮게 해 1500년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빛나는 황금지붕이 되었네요. 막시밀리안 1세는 건물 바로 앞의 광장에서 행해지는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이 발코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막시밀리안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황금지붕에는 부조로 새겨진 장식들을 볼 수 있는데요. 막시밀리안 1세와 그의 두 아내들, 재상, 궁중의 광대, 무희들의 모습과 가문의 문장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기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뒤를 돌아봤는데요. 허걱~~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향하고 있는 이길이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728x90

 

 

 

몇 년 전 낮에 왔을 때의 같은 포인트의 그림입니다. 

 

 

 

 

밤의 야경은 또 다른 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500년 600년 전의 그 길에 서 있는 듯합니다.

 

 

 

 

이 위치에서 황금지붕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모짜르트, 괴테, 하이네, 까뮈, 샤르트르 등 유명 인사들이 묵었던 호텔이 나옵니다. 간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황금독수리 호텔.

600년을 이어온 이 호텔은 여기에 묵었던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벽에 새겨두어서도 유명합니다.

 

 

 

이번에 갔을 때는 황금지붕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가는 쪽에 있던 와로브스키(SWAROVSKI) 매장이 이 건물 1층으로 옮겨온 듯 이곳에 있었습니다.

 

 

 

 

황금지붕을 등지고 왼쪽으로 뻗은 골목을 따라가면 호프부르크 궁전이 나옵니다.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황비가 집정한 장소로 의미 있는 곳인데요. 아기자기하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궁전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이 궁전 광장의 앞쪽에는 노천카페가 운영되는데 겨울에는 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으로 가봅니다. 너무 어두워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어서 몇 년 전 낮에 찍어두었던 사진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장녀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입니다. 그녀는 카를 6세의 국사조칙에 따라 합스부르크 상속권을 넘겨받게 되지만 합스부르크와 친족관계를 맺은 유럽 열강의 이의 제기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몇 년간의 전쟁 후 그녀는 1748년 10월 체결된 아헨 평화협정에 의해 모든 유럽 국가로부터 합스부르크의 상속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여성이 승계할 수 없었으므로 마리아 테레지아는 남편 프란츠 슈테판을 명목상의 황제로 즉위시키고 그녀는 실질적인 통치자로 오스트리아 및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특히 그녀는 왕위 계승 전쟁으로 쇠약해진 오스트리아의 국가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18세기 유럽 열강의 세계 각축전에서 오스트리아를 견고히 지켜낸 뛰어난 정치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많은 자녀를 두었고 유럽 각국과의 견고한 친분위해 주변 국가들과 자녀들의 결혼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특히 막내딸 마리아 안토니아(Maria Antonia)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아내가 됩니다. 이 왕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프랑스식으로 읽은 이름이죠.

 

 

 

 

마리아 테레지아 앞 사거리 광장입니다. 낮에는 트램이 다니는데.. 지금은 조용하네요.

이제 숙소로 향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