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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여행] 루브르박물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나라밖여행/서유럽

by 블루윙스 2018. 7. 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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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Mona Lisa)> 감상하기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꼭 방문하게 되고, 루브르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또 반드시 <모나리자>를 방문하게 됩니다. 누가 그렸는지는 몰라도 <모나리자>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인데 여기 루브르에 <모나리자>의 진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마주하면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에 놀라고, 그 다음은 <모나리자>의 그림이 너무 작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너무 작은 그림으로 모나리자 전시실에서 제대로 감상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모나리자>는 원래의 작품명은 <라 조콘다>로, 작품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두 번째 부인 '리자 게라르디니(Lisa Gherardini)입니다. 그녀는 16살의 나이에 그녀보다 19살이나 많은 프란체스코와 결혼했고 결혼한 지 8년이 지나 24살 때 그림의 주인공이 됩니다. 모나리자는 유부녀의 이름 앞에 붙이는 경칭 마돈나의 준말 '모나'와 '리자'의 합성어로 '리자 부인'이라는 뜻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그렸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에 올 때 가지고 와 추가 작업을 한 뒤 자신의 저택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에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했는데 당시로는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한 기법이라고 합니다. '스푸마토(sfumare)'란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물체나 인물의 윤곽을 안개에 싸인 것처럼 부드럽게 표현해 경계를 없앰으로써 주변의 배경과 잘 어우러지게 하는 매우 섬세한 명암법입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도 뚜렷한 선을 사용하지 않는 이 기법 때문인 것으로 표정이 명확하게 고정되지 않아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의 뒤 풍경을 묘사하면서 '대기 원근법'을 사용하였는데, 대기 원근법이란 색채의 조정을 통해 대기의 효과를 묘사함으로써 공간감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이 작품에서 레오나르도는 붉은 색조를 사용해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묘사한 반면, 먼 곳의 풍경은 청색조를 사용하고 윤곽선을 흐릿하게 묘사함으로써 작품 속의 공간이 뒤로 물러나는 듯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창적인 기법만으로도 모나리자는 충분히 유명세를 탈만 하지만 모나리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모나리자>의 도난 사건입니다.

1911년 8월 22일 서른 살의 이탈리아 출신 빈센초 페루자는 이전에  루브르에서 주요 그림에 방호 유리를 씌우는 일은 한 적이 있는 목수로 휴관일인 월요일 흰색 작업복을 입고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은 채 <모나리자>를 훔칠 수 있었습니다. 경찰은 페루자를 알아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실수로 정식 미술관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페루자를 조사에서 제외하는 바람에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모나리자>가 도난당하자 갑자기 사람들은 모나리자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모나리자>의 유명세에 한몫을 하게 됩니다. 2년이 지날 무렵 이제 사람들의 관심이 뜸해지기 시작할 때 페루자는 이탈리아의 한 화랑과 접촉해 <모나리자>를 팔고자 했는데 이때 직원의 기치로 진품임을 확인하기 위해 우피치 미술관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구실로 <모나리자>를 찾고, 페루자는 그날 저녁 체포됩니다.

다시 돌아온 <모나리자>를 파리 시민들이 열렬히 환영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겠죠.

 

 

이 사건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난 후 한 기자에 의해 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데, 발티에르노 후작이라는 아르헨티나 화상이 한 예술품 복원가와 <모나리자> 위조 및 위작 판매 계획을 세워 페루자를 고용했고, 그림의 도난과는 별개로 <모나리자> 다섯 점을 위조했다는 겁니다.

<모나리자> 도난 후 발피에르노는 <모나리자>를 훔친 장본인이 본인이라며 위작을 진품인 것처럼 팔았고 돈을 챙긴 발피에르노는 진품인 <모나리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므로 페루자를 찾지 않게 되자, 페루자는 직접 그림을 처분하려고 하다가 붙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때 진품인 줄 알고 막대한 돈을 들여 복사본을 산 사람들은 아무에게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겠지요.

 

 

이러한 사건으로 유명해진 <모나리자>는 1962년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두 달 동안 순회 전시를 하면서 당시로는 최대인 백칠십여 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1974년에는 도쿄와 모스크바에서 순회 전시를 하며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나리자>를 누가 그렸는지는 모를지라도 <모나리자> 그림은 모르는 이가 없게 만드는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 77×53Cm의 작은 크기도 모나리자가 세계 순방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루브르에서는 <모나리자>를 보기는 보되 많은 사람들로 인해 제대로 감상하기는 힘듭니다. 여행 가시기 전에 먼저 컴퓨터 모니터로 모나리자를 잘 살펴보고 가는 건 어떨까요.

레오나르도가 4분의 1밀리미터도 안 되는 얇은 두께로 수십 번의 붓질을 거쳐 완성한 매우 복잡한 기법 때문에 수백 년 동안 안료가 건조되면서 생긴 잔금 하나하나, 모나리자의 눈망울의 깊이, 모나리자를 가까이에서 그리고 조금 더 멀리에서 보면서 레오나르도가 구사한 스푸마토 기법과 대기 원근법을 느껴보고 간다면 짧은 시간이더라도 <모나리자>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참고도서   윤운중의 유럽미술관 순례1

              최영도의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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